다음카카오, 4년전 연매출 천만원짜리 회사가 다음을 집어삼키다


연간 매출액 천만원, 직원 22명. 아이위랩(IWILAB). 김범수 의장이 NHN에서 퇴직한 후 설립했던 벤처기업이다. 작은 벤처동 건물에서 소규모 팀으로 시작했던 회사다. 불과 4년전 얘기다. 이런 작은 팀이었던 아이위랩이 카카오로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는 한때 우리나라 최고 포털이었던 '다음(daum)'과 합병한다.

합병 후 카카오 법인은 해산하고 다음은 존속한다. 법률적으로는 다음이 카카오를 흡수합병한다. 그러나 이면을 보면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해서 우회상장을 하는 모양새다. 최대주주는 김범수 의장으로 합병 후 지분율은 39.8%다. 다음의 최대주주였던 이재웅 전 대표의 지분율은 3.6%가 된다. 다음카카오의 최대주주는 김범수 의장이 되고 경영권을 장악한다. 사실상 카카오는 다음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모습이다.

어쨌든 다윗이 골리앗을 먹어버린 사건이다. 카카오의 위대한 승리를 보면서 벤처인들의 가능성을 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포털 1위 자리를 네이버에 내주고 힘을 못 쓰다가 결국에는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다음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다.

김범수 의장님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김범수 의장님을 잘 안다. 너무 유명한 사람이기에 IT판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했던 사람은 그를 모를리가 없다.

김범수의 아이위랩은 축구로 치면 수비수가 아니라 공격수였다. 계속 슛을 찼다. 2008년에 부루닷컴이라고 미국에서 사진 공유 서비스를 오픈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위지아라는 설문조사/추천 서비스를 오픈했다.


두개 다 써봤다. 신경써서 잘 만든 서비스들이었다. 위지아는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런데 빛을 못봤다. 그 서비스들은 처참히 망했다. 그럼에도 아이위랩은 부지런히 슛을 찼다. 당시 김범수 의장님은 콘텐츠 소비 채널이 모바일 트렌드로 이동하는 것을 감지한 것 같다. 웹을 포기하고 모바일로 전투 장소를 옮겼다.

카카오수다, 카카오아지트, 카카오톡 총 3종의 모바일 서비스를 내놨다. 카카오 아지트가 2010년 2월에, 3월에는 카카오톡, 3월 30일에 카카오수다를 오픈했다.

그리고 6월에 카카오글로벌 서비스를, 8월에는 안드로이드 버전의 카카오톡을 오픈했다. 정말 엄청난 속도다. 2009년 초반부터 모바일에 대한 학습을 시작하면서 워밍업을 다졌지만 실제 카카오의 전신이 만들어진 것은 2010년 상반기 반년 동안이라고 보면 된다. 6개월간 만든게 4년후 오늘 시가총액 수 조원 규모의 회사로 재탄생한다. 놀랍다.

전략은 '다: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카페, '1: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블로그', '1:1 또는 다: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메신저 등 모바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채널들을 모두 커버리지 하는데 있었다.

이 전략 중 카카오톡이 시장에서 먹혀들어갔다. PC시장은 검색이 주류이지만 스마트폰은 기본적으로 통신 수단이기에 메시징 서비스 시장이 가장 클 것이라는 전략이 먹혔다. 이를 감지하자 회사 이름을 아이위랩에서 카카오로 재빠르게 바꾸고 카카오톡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카카오 이전에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었고 이후에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건 다음이 만든 마이피플이 한때나마 카카오보다 잠시 인기를 끌었던적도 있다. 카카오는 말을 못한다며 mvoip를 마이피플이 부각시키는 등 서로 직접적으로 공격을 해가며 마케팅을 했던적도 있었다. 어쨌든 결과는 카카오가 승리했지만. (한번 만들어진 네트워크는 깨기가 쉽지 않은걸 또 보여줌, 그래서 라인은 아예 카카오가 잠식한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부터 공략하는 전략을 써서 성과를 거둠)

카카오가 메신저 시장에서 커갈 때 모바일 콘텐츠 시장 자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기술 격차가 적은 분야라 어떤 메신저든지 론칭만 하면 기본적인 덩치는 키울 수 있던 시기였다. 소위 말해 '선빵 때린 사람들이 누리는 시대'였다.

경쟁에서의 승리 요인 중 하나는 '원활한 서비스'였는데 카카오는 천재적인 2가지 눈높이 마케팅으로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일정 회원이 넘어가자 서비스가 불안정해졌다. 당시 서비스 불안정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이 컸다. 이는 자칫 이용자 이탈로 이어질 수 있었다. 서버 증설이 필요했다.

여기엔 막대한 자본도 필요하다. 이륙하는 로켓엔 연료가 필요한데 마침 김범수 의장님에게는 돈도 있었다. 적시에 서버를 늘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메신저에 번개 마크를 달았다. 번개마크가 달리면 '겁나 빠른' 앱으로 업그레이드 된거라고 어필했다. 이 어필은 시장에서 먹혔다. 번개마크 어필 후, 사람들은 카카오는 불안정한 서비스라고 여기지 않았다. 어쩌면 서버 증설만 한 후, 간단히 공지사항 하나로 때웠어도 될 것을 재미있는 마케팅으로 연결 시켜 사람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유료 메신저 서비스는 알아서 성장이 멈췄고 서비스가 불안정하던 다른 메신저들은 카카오에 밀리기 시작했다. 일단 네트워크 효과가 생기면 이를 깨기가 쉽지 않다.

두번째 천재적인 마케팅은 '무료문자'로 어필한거였다. 거의 대다수 이용자들은 주고 받는 메시지가 '패킷'인지, 'SMS'인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사용하는 통신망이 기지국을 거치는지 랜선을 거치는지 와이파이를 거치는지도 모르던 시대였다.

그런 기술적인 부분을 일일이 설명하느니 '무료문자'한마디로 어필하는게 시장에는 파급력이 컸다. 이것도 먹혔다. 사람들은 '문자 메시지를 공짜로 보낼 수 있다'는 말에 너도나도 카카오를 다운로드 받았다. 대중들은 문자요금 10~20원에도 민감하다는걸 간파한거다. 이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김범수 의장님의 환경 덕분이라 본다. 과연 재벌집 아들들이 저런걸 간파할 수 있었을까? (그러고보면 예전에 네이트온이 MSN으로부터 PC용 메신저 시장을 뺐을 때도 하루에 무료 문자 10개를 준다고 하면서 시장을 잠식했던 것 같다. 서비스 회사에게 무료 마케팅은 참 강력하다. 특히 기존에 돈주고 쓰던 것을 무료로 대체할 수 있을때는 파급력이 쎄진다.)

카카오는 인간 본성을 꿰뚫고 다룰 줄 아는 회사였던 것 같다. 더불어 린 스타트업이란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보여 준 회사다.

오늘은 4살짜리 카카오가 조(兆)단위 시총을 자랑하는 다음을 집어삼키고 다음카카오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다.

IT산업은 정말 역동적이고 빠르다. 오늘의 루저가 내일의 위너로, 오늘의 위너가 내일의 루저가 되는 곳이다. 주변에 있는 평범한 개발자도 다시 봐야하지 않겠나 싶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리고 3년마다 한번씩 포털 1등이 교체된다고 했는데 그 정설을 깨고 살아남아 꿋꿋하게 1등 자리를 잘 지키는 네이버는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하다.

2014년 10월 1일
송종식


김범수 의장님에게서 배울 점 : 선택과 집중, 지속적인 슈팅, 유연한 의사결정, 남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매우 빠른 실행과 프로덕트 개발, 퍼블릭한 시장을 찾는 능력, 퍼블릭한 대중을 상대하는 언어의 선택, 버릴때 버리고 바꿀때 바꾸는 결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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