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매인 일가족의 죽음을 보며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인천의 한 일가족이 자살을 했다. 그 가족의 가장은 경매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사업이 신통치 않아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주택을 16채나 소유했는데 자산 대부분이 부채였던 것 같다. 월세가 걷히지 않았거나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아 현금 흐름이 나빴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투자는 본질적으로 현금이 풍부한 사람이 하지 않으면 주식보다 더 위험한 측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대출을 권장하고 주택하나에 큰 돈을 몰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인구 성장이 멈춘 시기에 20~30년전 패러다임으로 투자하는 건 자살 행위다.

문득 경매에 미쳐있던 내 과거가 떠올랐고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결혼전에 나는 부동산 경매에 미쳐있었다. 시중에 나온 부동산 관련 책은 다 찾아 읽었다. 지금은 머리속에 주식 생각뿐이지만 그때는 경매 생각 뿐이었다. 공인중개사 공부도 하고 민법 공부에도 푹 빠졌다. 현장 답사도 열심히 다녔고 업계에서 성공하신 분들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만났다.

이 에너지는 결혼후에도 이어져 와이프도 함께 경매에 푹 빠졌다. 아내와 둘이서 참 부지런히 임장(현장답사)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천안이나 대전까지 내려가서 해뜨기 전 오전부터 해질 무렵 저녁까지 쉬지 않고 경매 물건들을 보러 다녔다. 점심도 거르고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그때 얻은 경험과 추억은 지금도 귀하다. 참 세상은 넓고 별의 별 사연도 많구나 하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투자를 할 때는 현장을 답사해서 직접 내눈으로 투자 대상의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도 임장을 하면 할수록 절실히 느꼈다. 사진이나 서류상에서 느끼는 부분과 실제로 현장을 봤을 때 느끼는 부분은 분명 매번 달랐다.

그렇게 열심히 임장도 다니고 법정에도 드나들었지만 투자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기껏해야 실거주 목적으로 서울에 집 한채를 낙찰받은 정도가 가장 마음에 드는 성과였다.

임장의 열정을 법정까지 끌고 가지 못했다. 법정에 갈때마다 경매에 대한 나의 열정은 식어가고 있었고, 어느덧 부동산 경매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경매에서 손을 뗀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경쟁에 관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성에 대한 부분 때문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경쟁을 싫어한다. 그리고 물건의 본래 가치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도 싫어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 몸에 맞는 옷은 주식 가치투자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경매 시장이 언제부턴가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실제 입찰자와 학원에서 온 수강생 등 여러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경매 법정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찼다. 법정이 몰려온 인파를 수용할 수 없어서 법정 복도까지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되었다.

사진 출처 : 중앙일보 <joins.com>

아니나 다를까 매번 고가 낙찰도 속출했다. 1억 5천짜리 빌라에는 수 십명이 몰리는 일이 흔했고, 서울의 어지간한 10억대 아파트도 수십명이 응찰하여 고가 낙찰 받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실 수요자가 아닌 단순 투자자라면 저래서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쟁이 심했다.

내 자금 수준에서는 이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저가 낙찰을 받아서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주식판에서 실적이 부진한 회사의 실적이 앞으로 개선될 것을 기대해 최고 바닥에서 투자하는 턴어라운드 투자 방법이 있듯이 경매 시장에서도 위험 물건만 골라내 투자하는 방법이 있다. 일반 경매 참여자 보다는 프로들의 영역이다.

위험 물건에 내재한 위험이 실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파악해 법의 허점을 찾아내고 이를 이용해서 낮은 경쟁에 비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다. 위험 물건 투자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다. 그래서 특정 사례만을 지칭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위험 물건의 투자는 시나리오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적게는 응찰 보증금에서부터 크게는 투자금 전체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다(-.-)

그렇게 리스크가 높은 위험 물건에 대한 응찰 경쟁률 마저도 점점 높아졌다. 리스크 대비 수익률이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고 나에게는 투자 매력이 상실되어갔다.

그나마 매력적으로 보였던 건 500억 짜리 물건을 1~200억대에 단독 낙찰 받아가는 한 아저씨였다. 금액이 워낙에 커서 경쟁자가 없으니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다. 느긋하게 몇번 더 유찰되기를 기다리다가 충분한 안전마진이 생겼을 때 유유히 물건을 낙찰 받아갔다. 경매 투자의 본질인 '이겨놓고 싸운다'는 전법에 딱 맞는 투자였다. 그런데 나에겐 100억이 없지 않았는가?

경매에서 손을 떼게 된 계기 중 또다른 하나는 남의 피눈물로 돈을 벌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이론적으로는 경매 낙찰자 덕분에 채무자가 빚을 갚을 수 있고 채권자도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물건을 싸게 낙찰 받아야 하는 낙찰자의 입장과 최대한 비싸게 부동산이 낙찰돼야 행복해지는 채무자, 채권자 그리고 세입자의 입장이 정면으로 대치된다.

명도(거주자 내보내기) 과정에서는 대부분 큰 저항이 따르게 되고 사정이 딱한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많다. 이들을 명도해야 하는 과정도 마음 아픈 일들의 연속이다. 이런 일들은 내가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들이지만 내 손으로는 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들의 소중한 주거지를 가지고 장사를 한다는 것은 내 성향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경매에서 손을 뗐지만 경매라는 도구 자체는 매우 매력적인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지금도 수시로 경매 물건을 주시는 하고 있다.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토지는 경매로 획득하는 편이 여러 귀찮은 법적 절차를 피할 수 있어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경매 물건의 공급이 응찰을 하려는 수요자보다 크게 늘어나면 그때엔 다시 경매 법정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투자의 본질은 항상 같다. 경쟁은 피하는게 상책이다. 싸우기 전에 이겨놓고 싸워야 하고, 질 것 같은 싸움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을 때 사서 대중들에게 관심이 폭증할 때 팔아야 한다. 그리고 투자엔 항상 위험이 따르므로 나 역시도 늘 리스크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모쪼록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4년 11월 4일
송종식

댓글 2개:

  1. 가치투자를 공부하다가 정말 진심이 느껴지는 블로그를 찾았네요. ^^
    저도 예전에 경매를 공부하다가 말씀하신 두번째 이유로 인해 이건 아니다 싶어서 지금은 가치투자를 하면서 행복한 투자를 하고 있답니다.

    참 전 미국 뉴저지에서 IT회사에 다니고 있답니다. 종종 교류 나누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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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요새 제 블로그에 부럽고 멋진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많이 들러주시네요.

      미국 IT회사에서의 생활, 그리고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한국보단 낫겠죠? ㅎㅎ

      자주 교류 나누었으면 합니다. 어떤 이야기든 허심탄회하게 나눠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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