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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5일 토요일

우주의 먼지, 스쳐가는 바람, 순간의 소중함

고전서를 많이 읽는다. 문득 책을 읽다 보니 신동준 선생이 번역한 책이 많았다. 나는 메시지에 천착하고 집중한다. 그래서 보통 메신저에는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이번에는 메신저가 궁금했다. 그는 누구이기에 왕성한 고전 번역과 저술 활동을 하는가. 그리고 자신있게 고전에 코멘트를 척척 달아 대는가.

생전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무척 박했던 것 같다. 막말 논란으로 방송계에서 퇴출된 이력도 있다고 한다.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의 글은 나를 매료 시켰다. 몇 마디 말 실수를 했다고 평가절하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전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즐겼던 사람으로 보인다. 글에는 그의 야망이 뚝뚝 묻어난다. 그렇지만 번역과 저술 이외에 별 다른 야망을 실행하지는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본디, 안정된 세상에서 큰 인물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난세에 빛을 발하는 사람이 있다. 신동준 선생이 난세에 살았다면 지금보다 큰 뜻을 펼쳤을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반대로 내가 애정하는 위나라의 조조는 지금같이 평화로운 시대에 살았다면 자영업자나 샐러리맨이 되었으리라.

나는 학오 신동준 선생의 글을 잔뜩 읽었다. 뜻하는 바가 있어 감히 그의 제자 되기를 청하려 했다. 연락처를 수소문 하던 중 그가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그의 스펙도 알게 되었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경기고-서울대 코스를 밟은 한국의 정통 엘리트였다. 일생을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 사람 인생의 덧 없음도 느낀다. 만일 그가 큰 야망을 펼쳤다고 한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공평하다. 인간의 생은 짧고 덧 없다. 항상 상기하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은 더욱 다짐하게 된다.

"나는 매 순간을 소중하게 살다가 후회 없이 죽으리라."
"사랑한다, 고맙다, 감사하다. 마음껏 이야기 하다가 죽으리라."
"감추거나 후퇴함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살다가 죽으리라."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먹고 싶으면 먹고, 도전하고 싶으면 해보고, 사랑하고 싶으면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문득 오늘은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다.

조금 더 일찍 그에게 연락해 볼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2023년 4월 15일
송종식
 
생전 학오 신동준 선생의 모습


2022년 10월 18일 화요일

인간보다 더 우월한 존재에게 우린 그냥 도축되는 존재라면?


오늘 임플란트 2차 수술을 받았다. 1차 수술 때 식립한 나사는 뼈에 유착이 아주 잘 되었다고 한다. 젊고 건강하니 큰 걱정은 없다고 하셨다. 2차 수술을 받기 위해 눈을 가리고, 입을 벌리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언제나 치과는 나에게 공포로 다가오는 공간이다. 의사 선생님과 치위생사 선생님들이 나는 못 알아 들을 전문 용어를 주고 받으면서 분주히 움직이셨다. 내가 한 건 그저 입을 벌리고 가만히 누워있는 것 뿐이었다.

뭔가 이런 저런 기계들이 '윙~ 윙~' 돌면서 살을 째고, 뼈에 뭔가 하는 것 같았다. 마취가 잘 되어 있어서 별 느낌은 나지 않았지만 문득 또 이런 망상이 들었다.

'우리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이 지구상에 존재해서, 우리를 사육하거나 잡아다가 도축을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 내가 치과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도축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런 해괴한 상상력이 마구 돋아 나갔다. 

나는 지금과 같은 이성, 지금과 같은 감성, 지금과 같은 지능이 유지된 상태이겠지만 몸은 도축되기 위해 어떤 기계 장치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나 말고 다른 인간들이 줄줄이 그 기계 장치에 걸려 있는 모습도 상상했다. 살이 찢겨 나가고, 목이 달아 나기 전 까지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온갖 상상을 다 동원하여 그 짧고도 긴 시간을 이겨내고 있을 것이다.

도축 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그 인간들은 사육된 것이 아니라 포획된 것이라면, 출신 성분이 다양할 것이다. 지능도 다양할 것이며, 각자의 능력도 다채로울 것이다. 누구는 서울대를 나왔을 수도 있고, 누구는 중졸일 수도 있을테고, 누구는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일 수 있고, 누구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구는 얼굴이 잘 생겼을 수도 있고, 누구는 못 생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개 중에는 범죄자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봉사활동을 평생 해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의 식량이 되기 위해서 기계에 줄줄이 매달려 도축을 기다리는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다 부질없지 않은가? 어차피 몇 분 후면 모두 목이 달아나고 부위별로 썰려 식재료로 변해 있겠지.

가끔 일부러 고급호텔을 이용한다. 사랑하는 애인이 있어서 함께라면 금전적으로 아깝지도 않을테지만 혼자서 종종 호텔에 가서 잠도 자고, 호텔 사우나도 이용하고, 호텔에서 밥도 먹는다. 

가끔 시그니엘과 같은 초호화 호텔의 스파와 사우나를 이용하다 보면 '참 사람의 몸이 볼품없음'을 느낀다. 나도 붕알 두 짝, 저 중년 아저씨도 붕알 두 짝, 저 할아버지도 붕알 두 짝. 엉덩이는 내가 저 할아버지보다는 조금 더 젊어서 탄력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람의 벗은 모습을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속된 말로, '부자도 죽창 한방, 가난한 사람도 죽창 한방'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잘 떠오르는 곳이 이곳이다.

알몸으로 있을 때는 볼품 없던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 옷 입으신 걸 보니 귀티가 난다. 딱 봐도 비싼 옷이다. 옆에서는 할아버지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자연 상태에서는 너도 죽창 한방, 나도 죽창 한방이지만, 소셜포지션이 입혀지면 그때는 죽창으로 저 사람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점점 없어진다.

뭔가 일을 할 때, 세상을 대할 때, 사람을 볼 때 간판과 소셜포지션에 압도되면 일단 지고 들어간다. 상대의 실력이 파악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수 접고 들어가게 된다. 그런 것에 위압감을 느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주영 회장님이 쌀가게 입사를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탈 줄 모르면서도 탈 줄 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입사했던 일화를 기억하는가? 자전거에 쌀을 실어 배달을 나가면서 수 십번 넘어진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실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이때 정주영의 사고회로는 2가지였다. 1) 일단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2) 그래 남들도 다 타는 자전거, 내가 왜 못 타?! 내가 왜 못해?! 그러니까 나도 타야지!

살다 보면 사람들의 출발선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막대한 자본을 쥐고 저만치 앞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살다가 집이 어려워져서 공부를 포기하고 저만치 후퇴하여 삶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알몸에 덧 씌워진 소셜포지션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자꾸만 의식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세상 사람 모두 나처럼 붕알 두쪽이 전부다.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에게 잡혀가 도축 당하기 직전이라면 너나나나 어차피 다 식재료에 불과하다. 좀 신기한 사고방식 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리셋하여 생각해 보면 뭔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의외로 명쾌한 답이 나오기도 한다.

인간의 삶이란 별 것 없다. 우리네 삶도 덧 없다. 하고 싶은 건 당장하고, 이왕 했다면 무쏘의 뿔처럼 밀고 나가보고, 끓어오르는 감정이 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별 것도 없고, 덧 없는 인간의 삶이 그렇다고 긴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만 허무주의에 빠지지는 말자. 마음먹기에 따라 매 순간 행복하게 살고자, 의미있게 살고자 한다면 그 또한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2022년 10월 18일
송종식


2021년 12월 17일 금요일

유튜브를 1년 쉬는 동안

Unsplash @helloimnik

투자와 별개로 나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너무 좋다. 투자도 재미있지만 컴퓨터와 인터넷도 너무 재미있다. 글을 떼던 시기에 거의 맞춰서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으니 내 인생은 거의 컴퓨터와 함께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활동은 무궁무진하다. 그 중에서도 무언가를 제작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다. 그리고 내가 제작한 것을 사람들이 봐주거나 이용할 때 거의 오르가즘 수준의 희열을 느낀다.

처음 제작한 소프트웨어를 PC통신에 공개했을 때, 이용자 숫자가 0에서 1이 될 때 느꼈던 그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쨌든 소프트웨어 개발이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이든 비슷한 맥락의 희열이 있다. 내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것은 없어서 남들처럼 10만회, 100만회 수준의 조회수는 나오지 않지만 고정적으로 봐주시는 분들 덕분에 재미있게 컨텐츠 제작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대개미 주식투자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적 열풍에 뒤따른 업계의 슈퍼스타들도 대거 탄생했다. 물론, 이들이 투자를 잘 하는 진짜 투자자인지 가짜 투자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2019년과 2020년 즈음 시작한 많은 주식투자 유튜버들이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다.

작년에 유튜브에 영상을 꾸준히 올린 사람들은 무명에서 단 1년만에 수십만 구독자를 거느린 업계 스타급 유튜버가 되었다.

과열된 분위기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작년에 의도적으로 유튜브를 쉬었다.

작년에, 그러니까 물 들어올 때 유튜브를 꾸준히 했으면 내 채널도 지금 꽤 많이 성장하고 알려졌을 것이다. 고민끝에 나는 의도적으로 유튜브를 쉬고 들어오는 물을 회피하였다.

컨텐츠 제작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것은 유희수준에서 그쳐야 하고 운이 좋으면 용돈 수준의 소득이 생기는 정도면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지식을 하나라도 더 알려서,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내 덕을 봐 소득과 자산이 높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사명감도 생기고, 또 행복한 것이고.

작년에 떡상한 수 많은 재테크 채널들처럼 갑자기 떡상을 해버리면 많은 부작용이 따를 것이고, 내 삶에도 내가 원치 않는 변화들이 생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로 들어오면서 주식투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거래대금도 거의 1/10토막이 났다고 한다.

물론, 주식투자 컨텐츠들의 인기도 싸늘하게 식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다시 슬쩍 유튜브를 시작해 보고있다. 

지금 영상을 열심히 올린다고 해서 채널이 떡상할 가능성은 없지만 덕분에 마음 편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컨텐츠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지금 내 채널을 구독하고 보는 소수의 사람들이 시장에서 장기간 살아남을 진짜 투자자들일 것이다.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불나방들과는 나도 함께하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 대부분 주식시장을 떠나기도 했을 것이고.

불과 1년 전에 주식투자에 열광하던 수 많은 사람들은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지난주 까지만 해도 코인투자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코인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다. 올 초까지만 해도 집을 사지 않으면 바보라면서 조롱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자신들이 하우스푸어가 될까 노심초사 걱정하고 있다.

내가 유튜브를 쉬는 단 1년 동안에도 수 많은 무명의 투자자들이 유명 유튜버가 되었다. 시대는 거침없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거친 파도처럼 변한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숨이 찰 지경이다.

이럴 때 일수록 기본을 잊지 않아야겠다. 정중동의 태도를 고수하며 잔바람엔 흔들리지 않으리라.


2021년 9월 27일 월요일

장사하는 사람의 태도 (손님은 걸레짝?)


점심시간이라 식당엔 손님들이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즐기는 직장인 손님들도 꽤 있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나는 가게 맨 구석에 딱 하나 있던 2인석에 자리를 잡았다(이 가게는 기본테이블이 4인석이다).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급하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옆으로 한칸 더 들어가 달라는 주문이었다. 점심시간이니 단 한 자리라도 더 효율적으로 돌려서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은 잘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맨 구석의 작은 테이블에 앉은 것이다. 혼자서 다인석을 잡고 앉아 있으면 민폐임을 아니까. 

나의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내가 더 깊숙한 테이블로 이동하길 요구했는데 그 테이블은 내가 보기엔 못 쓰는 테이블인 줄 알았다. 

걸레인지 수건인지 모를 청소도구들이 세탁된 채 주렁주렁 널려 있었기에. 그런 자리에 앉으라니 기분이 몹시 나빴다. 그래도 식당이 가장 바쁜 시간이고 나만 참으면 그만이니 밥만 빨리 먹고 그 가게를 뜰 생각이었다. 

내 손으로 의자와 테이블에 널려 있는 말린 걸레 같은 걸 일일이 치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밥을 기다렸다. 잠시 후에 밥이 나왔다.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왔다갔다 하면서 계속 내 자리를 쳐다 보셨다. 물론 내 자리만 쳐다본 건 아니었다. 손님들이 가급적 밥을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테이블 회전에 목숨을 건 눈빛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손님을 케어해 주기 위한 눈빛은 아니었다. 너무 눈치가 보여서 밥을 코로 마시듯이 위장으로 마구 쏟아넣고 나왔다. 

사장 아주머니는 계산대에서도 최악의 태도를 보여 주셨다. 내가 결제를 하겠다고 서서 기다리는데도 명품백에 든 현금을 세느라 정신이 없었다. 앞팀에서 현금 결제를 하고 갔고 가방에 모아 둔 현금과 계산을 하기 위함이었나보다. 

돈을 다 세셨는지 사장님은 내 카드를 낚아 채듯이 가져가서는 결제 후 카드를 손에서 손으로 전해주는게 아니라 결제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휙 놓았다. 

나는 너무 화가 났지만 이 자리를 뜨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하며 도망치듯 가게에서 나왔다. 그 사장님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다음 업무를 위해 자리를 바삐떴다. 

식사비가 싼 것도 아니고 공짜로 밥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참담한 기분을 느껴야 되는지 모르겠다. 

그 여사장님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파는게 아니라 손님들을 돈 복사 기계 정도로 보는 사람이었고, 짧은 인상에서 돈미새(돈에 미친 새x) 냄새가 강하게 났다. 

앞으로 그 가게는 두번 다시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동네에 놀러오는 손님 접대도 종종 하는 편이다. 단골을 트면 손님들을 많이 몰아 주는 편인데, 그 가게는 아웃이다. 불쾌함이 가시지 않아서 아까 먹은 점심을 토할 것만 같다. 

* 지나친 돈미새가 되레 돈과 멀어지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위의 사례: 손님이 떨어져 나감.


2021년 7월 26일 월요일

나는 UFO를 본 적 있다

요즘 부쩍 UFO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기분탓인가. 내가 어릴적,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UFO 이야기가 붐을 이뤘던 적이 잠시 있다. 그때는 대부분 공포요소나 미스테리 요소로 다루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최근의 UFO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요소보다는 뭔가 그것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돌아 다니고 있음을 확신한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미 공군이나 NASA가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는가 하면 CCTV나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 UFO가 촬영되고 있다. 촬영기기의 보급으로 과거보다 곳곳에서 미확인 비행물체가 찍힐 가능성이 확연히 높아졌다. 또, 과거보다 영상 판독 기술도 좋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어설픈 합성 따위로 사람들을 속이지 못한다.

요즘 UFO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나도 20여 년전 UFO를 목격한 추억이 떠 올랐다.

때는 군복무를 하던 시절. 장소는 포항의 모 해안초소. 보통 해안 경계 근무는 2인이 1조가 되어 서게 된다. 당시에 나는 짬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근무는 항상 선임들과 들어갔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야간 해안 경계 근무를 서게 되면 선임들은 들어가자마자 초소에서 잠을 잔다. 후임은 서서 경계를 서는데, 보통은 바닷가 쪽을 안보고 간부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지킨다. 간부가 들어오면 잠자는 선임을 깨운다. 그게 경계 근무를 서는 후임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이건 국방부장관님도 모르실 1급 군사 기밀인데 이렇게 누출해도 되나 모르겠다.

군에 다녀오지 않은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시면 몹시 불안감을 느끼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이렇게 허술하게 경계를 서는 것 같아도 의외로 바닷가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놓치지 않고 잘 잡아낸다. 그러니 든든하게 두발을 뻗고 주무셔도 된다.

해안쪽도 가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았다. 군용 초소는 일반인들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었다. 그래서 가끔 민간인이 진입할 수 없는 군사지역 해변 끝단까지 차량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한밤중에 그런 곳에 들어오는 민간인 차량들은 목적이 대부분 뻔했다. 우리는 가끔 그런 차량에 무슨 군사작전을 하는 마냥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차량 유리창에 몰래 붙어서 좋은 구경을 하곤했다.

어쨌든 이날 야간 경계근무도 그렇게 평소처럼 평화로웠다. 선임은 초소 안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나는 초소 바깥에서 야시경으로 부지런히 바닷가 쪽과, 해안쪽을 감시했다.

야시경으로 하늘을 보면 별이 무척 잘 보인다. 나는 어릴적부터 별을 좋아했다. 그래서 경계근무를 서면서도 나는 이따금씩 야시경으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한 불빛이 잡혔다.

일단은 가만히 있으면 다른 별들과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빛은 움직임이 있었다. 현대 인류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형태의 움직임과 속도였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혹시 인공위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지만 평소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는 나는 인공위성과, 항공기의 움직임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인공위성은 아니었다.

눈에서 야시경을 떼고 보았다. 야시경을 쓰지 않아도 그 빛은 아주 잘 보였다. 동쪽 하늘에서 서쪽 하늘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서쪽으로 이동한 불빛은 1초 정도 급정거를 하여 제자리에 멈춰있더니, 순식간에 3개로, 그리고 6개로 분열되었다. 내가 가진 기초적인 물리학적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아마 그것을 보았다면 누구나 그리 느꼈을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보아서 그렇지 상당한 거리를 저 정도로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계속 나를 경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6개의 불빛은 다시 하나로 합쳐져서 순식간에 동쪽 하늘로 사라졌다. 커브를 틀어 이동하는 속도도 정말 순식간이었다. 비행기나 인공위성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곧장 90도로 방향을 틀어 순식간에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형태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들은 것이 아니면 어떤 사실에 대해서 잘 믿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때도 내가 피곤해서 헛것을 보았나 싶어서 멍하니 서 있었다. 하늘을 계속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까 그 불빛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이번에는 초소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선임을 용기내서 깨웠다. 자고 있는 선임을 깨우거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당시에 나는 짬밥도 거의 먹지 않은 상태였고, 같이 근무를 서던 선임은 떨어지는 낙엽도 멈춰 세운다는 상병 말호봉이었다.

"OO해병님, OO해병님"
"왜? 간부 올라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아.. 새끼야 근데 왜 깨워"
"그게 아니라 하늘에 UFO가 있습니다"
"아, 이 미친놈아, 기어이 돌았나. 그런거 없으면 쳐 맞을 줄 알아라"

잠을 자던 선임은 나의 긴박한 행동에 귀찮다는 듯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입으로는 온갖 짜증을 다 내뱉으면서.

밖으로 걸어나온 선임에게 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선임은 입에서 탄성을 질러댔다.

"와, 저게 뭐야. 와 뭐야 저게 도대체 우와!!"

이제는 나보다 선임이 더 신난 것 같았다. UFO도 UFO지만, 그 자리에 그 친구들이 있어줘서 고마웠다. 혹시라도 사라졌으면 나는 그날 가루가 되게 얻어 터졌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는 게 입증되었다. 나는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UFO 이야기를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 이후에 나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UFO가 외계인이 타는 비행체라고는 단정하지 못해도 뭔가 신기한 비행체가 실재하기는 하는구나!"

근무를 함께 섰던 선임과 나는 아침 식사 시간에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당연히 모두 믿지 않았다. 우리 둘만 미친 인간들 취급을 받았다. 상병 말호봉 선임은 병장 선임들에에게 엄청난 놀림을 당했다. 나는 내 윗 선임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같이 UFO를 본 선임과 나는 무척 억울했다. 어쨌든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 선임과 나는 확실히 보았고,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야간 경계근무 장소에 진입하는 해병대원들 <자료: 연합뉴스>

내가 가끔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늘상 되묻는 이야기들이 있다.

질문 1) 야시장비에 뭔가 묻었거나 빛이 번진것은 아닌가? 이건 확실히 아니다. 베테랑 군인이 빛 번짐과 이상한 비행체가 날아다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리가 없다. 그리고 위에도 언급했지만 야시 장비를 쓰지 않고 맨눈으로 보아도 그 빛은 잘 보였다.

질문 2) 날파리나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UFO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이것도 아니다. 당시 초소는 빛이 거의 없었다. 그런 것도 가로등 빛이나 무언가 있어야 할텐데 어두컴컴한데 날벌레가 보일리가 없다. 또한, 날벌레가 움직이는 패턴과 그 비행체가 움직이는 형태는 확실히 다르다. 베테랑 군인들이 날벌레 날아다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리도 없다. 당시 나는 시력이 2.0이었다.

질문 3) 인공위성 아닌가? 이 부분은 어릴적부터 별을 보았기 때문에 확실히 구분한다. 그리고 동쪽 지평선 부근과 서쪽 지평선 부근을 순식간에 왔다갔다 하고 빛이 3개로, 6개로 분열되는 군무까지 보여줬는데, 인공위성은 절대로 아니라고 확신한다. 나 뿐만 아니라 그 선임도 탄성을 질러댔으니.

질문 4) 드론 같은 것은 아닐까? 당시에 드론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드론의 움직임을 보았을 때 드론으로는 택도 없는 움직임을 가진 물체였다. 그리고 드론이 그렇게 떠 다닌다면 아마 우리 방공망이나 감시장비에 감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소초 옆에는 TOD를 운용하는 소초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높은 고도에서 움직이는 비행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체였으므로 절대로 드론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때 그 비행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외계에서 온 것일까? 우리 후손들이 타고 온 미래의 비행체일까? 아니면 어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비밀리에 연구하는 비행체였을까?

2021년 7월 26일
송종식


2021년 3월 23일 화요일

한국에서 건드리면 안 되는 것 3가지

정의의 여신상 유스티치아 <자료 : pixabay>

한국 사회에서는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역린이 몇가지가 있다.

"아이는 건드리지 마라" 이런 것 정도는 한국 사회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문명화가 된 나라라면 어디서든 통용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건드리면 안되는 독특한 역린 몇가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군대문제, 자녀들의 대학 입시문제, 나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편법을 써서 돈을 버는 문제 등.

이런 문제들의 공통점은 '공정성'과 관련된 것이다. 물론 공정성은 사회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그 공정함의 잣대가 특히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는 분야가 위에서 열거한 것들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 문제에서 열외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누구나 다 나의 의사에 반하여 군대에 소위 '끌려간다'. 가장 꽃다운 나이에 온갖 고생을 하면서 2~3년의 시간을 증발 시켜버린다. 군대에서 배운 것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군대에 안 갔으면 배우는 것과 쌓이는 것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하다 보니 편법을 쓰거나, 사회지도층 부모의 백과 힘으로 군대에 빠지는 행위를 국민들은 참지 못한다. 군대 문제가 생기면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직업은 못한다고 봐도 된다.

자녀들의 대학입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부부들을 보면 내 자식은 애지중지 금지옥엽으로 키우면서 다른 자식에 대한 속마음은 그야말로 뚱하게 생각하는 경우들을 본다. 그거야 동물의 유전자 복제 본능에 따라서 그럴 수 있고 그게 당연한거라고 본다.

내 자식은 다른 집 자식보다 하나라도 더 좋은 걸 먹여야 하고, 하나라도 더 잘 해서 가급적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게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갈수록 자녀를 낳는 수도 줄어서 자녀는 더욱 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정성에 대해서 가장 예민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자녀들과 관련된 입시문제, 그리고 먹을 것이 가득 들어차 있는 직장으로의 취업문제다.

이 부분도 부모의 능력이나 편법을 이용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혹은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고 싶어하는, 돈 많이 주고 앞날이 탄탄하게 보장된 직장에 낙하산으로 취업하는 경우에는 온 국민이 공분하며 들고 일어선다.

뭔가 그 자녀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녀들보다 별로 잘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 좋은 학교에 들어가? 그 좋은 직장에 들어가?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경쟁해서 지더라도 수긍하기 힘든 것이 자녀와 관련된 것인데 상대의 편법으로 졌다고 생각하면 그 분노는 더 커지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이번에 LH에서의 것과 같은 것이다. 뭔가 나보다 별로 특출난 것도 없는 인간들이 국토 개발 정보를 틀어쥐고 반칙을 써서 떼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쎄거나 능력있는 사람에게는 복종한다. 그러나 자기와 별 다를 것 없이 애매한 사람이 뭔가 큰 돈을 벌면 그때부터 배가 아파 죽는다. 온갖 논리와 욕설을 만들어서 물어 뜯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어 물어뜯는다.

하물며 공정하게 돈을 벌어도 사람들이 배아파서 죽는판에, 국민들이 주는 세금을 먹고 사는 공기업에서 개발정보를 사전에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짓을 했으니 이것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남이 편법을 써 무엇인가 얻으면 떼로 몰려 들어 물어뜯고 화를 낸다. 반면에 자기 자신들이 얻는 편법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면도 있다. 

살다보면 사회지도층은 물론이고 서민들까지 다양한 편법을 저지르다 발각된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극도로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들도 자기 위치에서 부지런히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

남들이 새치기 하는 것에는 극분노하지만, 자신이 인맥을 동원해서 새치기를 하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들의 본성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고, 드러나면 공격 받는다. 그것이 이치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부자가 아니다. 그런데 부자라고 오해를 받고 있다. 그저 여분의 시간에 취미로 글을 쓰고, 취미로 영상을 만들고, 취미로 코딩을 한다. 단지 투자 공부를 오래했고, 투자를 좋아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모두 사람들과 만나는 접점에 있는 것들이다 보니 조금씩 이름을 알아보는 분들도 생기고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도 생기는 것이다. 내가 영위하는 취미활동이 그저 사람들과 만나기 용이한 것들이다보니 그런 것이지 나는 부자가 아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요즘 유튜브나 미디어에 자기 자신이 부자라며 등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이 진짜 부자인지 가짜 부자인지 알 길이 없다. 가짜 부자이면서 어그로 끌어서 돈을 벌기 위해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혹자는 그것도 사업적 능력이라고 말하기도 하더라.

내 경험상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사람은 대부분 허당이었다는 것이다. 진짜 부자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 않았다. 진짜 부자는 감추고 숨어야 하고, 가짜부자는 드러내고 알려야 한다. 각자 자신의 최대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어쨌든 온라인에서 부를 과시하려는 분들도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대중들은 언제나 돌변한다는 것이다.

사랑해요, 존경해요를 외치다가도 순식간에 돌변하는 것이 대중이다. 그도 그럴것이 남들이 얼마든지 배아파 할 수 있는 돈 벌었다는 자랑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또한, 수 만~수 십만의 팔로워 중에서는 범죄자도 다수가 포함돼 있다.

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지만 나부터도 항상 경계하고 주의하는 이유다. 마음 속 깊이 겸손한 사람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신이 아닌 이상은 겉으로라도, 겸손한 척이라도 하고 살아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렇다.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하다보면 구글플레이 스토어에 올린 앱이 구글의 정책 위반으로 삭제되거나,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유튜브 정책 위반으로 삭제되는 사례는 많다.

그럴 때,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의 대응이 다르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내 앱이나 영상에 뭐가 문제가 있어?"라고 문의를 넣는 반면, 한국인들은 "쟤는 나보다 더 심하게 하는데 왜 내것만 삭제해? 쟤 것도 삭제해." 하면서 문의를 넣는다고 한다.

장사나 사업을 해보면 알겠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멀리있는 대중들이 아니라,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장사를 잘 하고 있는데 갑자기 행정제재가 들어오거나 힘든일이 생긴다면 근처에 다른 사장이 꼬투리를 잡아서 투고를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 사업이 잘 되고 있는데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 낸 이상한 악플과 악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업에 타격이 받기 시작하면 내가 돈 잘 버는 것을 시기질투하는 나와 비슷한 연령과 처지의 친구거나 지근거리의 지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가 뭐하나 건수라도 잡히면 그들은 대중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대중들은 좀비떼처럼 몰려든다.

우선은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압도적인 내공과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처음부터 늘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몇몇 블로그들만 둘러보아도 얼굴 모를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거나 상처를 주는 글을 심심찮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다 업보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내 자식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에 누구하나 만만한 사람은 없다. 적을 만들기 시작하면 삶이 고달파 진다. 사람들은 예민한 존재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하여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적당히 주변과 나눌줄도 알아야 롱런한다. 보시 공덕이라는 것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먹으려하면 체하고, 나눠 먹으면 더 크게 성장한다.

애초에 남을 생각하고 의식하여 살 필요는 없지만 구태여 남에게 해를 끼쳐 남이 내 인생에 개입할 여지를 주어서는 안된다.

2021년 3월 23일
송종식


2020년 12월 13일 일요일

눈이 소복이 쌓인 아침

창 밖을 보니 밤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소복히 쌓인 눈을 밟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충 입고 집 밖으로 뒤쳐 나갔습니다.

온 동네를 하얗게 물들인 2020년 12월의 첫 함박눈 <사진 : 송종식>

스마트폰을 챙겨 들고 동네로 나가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눈은 아직 밟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지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신나서 함박눈을 맞으며,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눈을 밟고 다녔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성인일 될 때 까지 살던 포항은 눈 구경을 하기가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살면서 눈을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후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지금도 눈만 보면 아이들처럼 즐거운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가 먼저 발도장을 찍어 두어 반가움에 카메라를 땅에 바짝 대고 찍어 보았다 <사진 : 송종식>

약간의 속살만 힐끔 보여주며 서 있는 나무들과,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 정발산의 함박눈 <사진 : 송종식>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평소에 즐기던 산책과는 색다른 기분이었습니다. 함박눈이 듬뿍 쌓여있는데, 신기하게도 크게 춥지는 않았습니다. 동네를 쭉 걷다가 정발산에 도착하니 정발산 언덕에는 눈썰매를 가지고 놀러 온 어린이들이 보였습니다. 저도 그들과 섞여 동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눈이 되도록 빨리 녹지 않기를 바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비치면서 눈은 빠르게 녹았습니다. 잠시나마 꿈 속을 걷던 것 같은 아침이었습니다.

2020년 12월 13일
송종식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길 위의 레밍떼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면 더욱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이가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특히,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무섭기까지 하다.

치안 좋기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리고 치안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서도 잘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소수의 레밍같은 사람들 때문에 길거리에 나서기가 두렵다. 앞서 말했듯 무섭기까지 하다.

#1

나는 운전대를 잡으면 가급적 양보를 하는 편이다. 좁은 길에서 다른 차와 마주 보는 경우라고 하자. 다른 차가 저 멀리서 골목에 진입하고 있으면 나는 진입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편이다. 먼저 지나가라고. 

이미 진입해서 앞차와 마주보고 있으면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선에서 먼저 후진을 해서 차를 빼 주는 편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게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도로를 수월하게 빠져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삶에서 괜한 분쟁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은 양보하면서 사는것이 밤에 두 발을 뻗고 자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런데, 의외로 마주보는 도로에서 시비가 붙은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서로 차를 빼주기 싫어서 버티다가, 급기야는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본다. 서로의 시간 낭비이며,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가 아닌가? 말다툼을 해서 이긴들 남는 것이 무엇인가? 만에 하나 상호간 흉기 범죄라도 일어나면 남은 인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사람들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터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레밍떼처럼 그렇게 돌격한다.

#2

우리나라의 보도는 좁은 편이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자전거, 킥보드, 오토바이 등이 보도 이용에 합세하면서 가뜩이나 좁은 보도가 더 좁아졌다.

그래서 통행 시 특별히 유의하는 편이다. 길에서도 나는 극도로 조심하는 편이다. 앞에 누군가가 걸어오면 상대가 지나가기 편하도록 길을 바짝 비켜주는 편이다.

역시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반대로 내가 싸울 힘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요즘 세상이 무섭다. 괜히 부딪혀서 적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어깨 부딪힘으로 하루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주보는 서로가 자기 갈 길로 쭉 가면 몸이 부딪히든, 어깨가 부딪히든 반드시 충돌하게 된다. 내가 양보하지 않으면 서로 치고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조금씩 잘 비켜주고 지나간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기싸움이라도 걸 듯이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일부러 몸을 치고 가려고 작정하고 걸어오기도 한다. 이것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일부 남자분들만 그런 것 같지만 여자분들도 젊으나 연세가 있으나 의외로 걸어오는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돌격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돌격하는 레밍떼 같아서 무섭다.

#3

보행신호가 파란불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좌우를 충분히 살피고 길을 건넌다. 확실히 차량이 멈췄거나 오는 차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야 발걸음을 한다.

그리고 신호가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차량이 보이면 차량을 우선 보내고 나중에 길을 건넌다. 혹시 내가 길을 건너고 있는데 차량이 오면 뛰면서 길을 빨리 건너 가 준다.

반대로, 운전자 입장에서는 탱크같은 보행자를 자주 목격한다. 내 차가 아직 정차하지도 않았는데, 무심한 듯 느그적느그적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만에 하나, 운전자가 음주운전자거나 잠깐 다른 짓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냥 죽는다. 

혹시라도 보행자를 배려를 하지 않고 질주하는 차량이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나처럼 조심하니까 보행자가 안 죽는 것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몸이 탱크도 아니고 무슨 배짱으로 차량이 오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도로위를 슬렁슬렁 건너 다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무단횡단을 하면서도 그러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소름 돋는다. 이들이야 말로 길 위의 레밍같다.

물론, 차량이 보행자를 배려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보행자도 충분히 조심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자기만 손해이다.

#4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줄을 서 있다. 내 앞에는 한 사람이 서 있다. 엘리베이터가 왔다. 앞 사람이 탄다. 나도 탄다. 그런데 문이 닫히면서 내 발이 걸린다. 왜 이렇게 문이 빨리 닫히나 봤더니, 앞서 탄 사람이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런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사람이 타고 있는데 버튼을 누르기 바쁜 사람이 적지 않다. 나는 탔으니 그만이라는거다. 반대로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닫힘 버튼을 막 누르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몇번은 엘리베이터를 잡아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는데 알고보니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가급적 뒷 사람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는 편이다. 그게 차라리 기분이 낫다. 닫힘 버튼 그거 죽어라고 눌러봤자. 별 효과도 없다. 누르는 본인도 기분만 안 좋다.

닫힘 버튼 누른다고 어차피 엘리베이터 탈 사람이 안 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그 버튼을 눌러대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레밍같다.


#5

신호가 없는 동네 골목의 사거리. 골목 두 곳에서 차량이 온다. 이럴 때 어느 한쪽이 양보하면 수월하게 빠져나간다. 그러나 다른 골목에서 오는 차를 보고도 앞으로 돌격하는 차량들이 적지 않다. 저러다가는 사고가 날텐데 싶은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두 차량은 사고 직전에야 브레이크를 밟는다. 이건 서로 못 봐서 그런게 아니다.

이것도 일종의 기 싸움이며, 나부터 빨리 지나가야 한다는 이기심의 발로에서 시작되는 행동이다.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지는 걸 이들도 알거다. 알면서도 일단 브레이크는 안 밟는다. 적지 않은 차량들이 이런 행태를 보인다.

무시무시한 레밍이다.

#6

길 위에서의 양보는 일단 나 자신에게 큰 이익을 준다. 배려가 손해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 기다리고 배려하는 것을 손해로 인식한다. 무조건 들이대고, 돌격하고, 구겨 파고 들고, 밀어 붙이면 되는 줄 안다. 그게 비단 성격이 급한 것 만의 문제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편하고 보자는 발생의 발로가 아닐까? 상대에 대한 배려 부족이 아닐까? 길에서 발생하는 작은 충돌로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무지가 아닐까?

길에서는 그렇게 1분이라도 빨리 이동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해놓고, 일상에서는 시간을 허비한다.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차라리 일상에서 시간을 아껴쓰고, 길에서는 여유를 갖는 것이 어떨까? 후자가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5월 1일 금요일

인천 중학생 합동 성폭행 사건

감옥에 가야 할 성폭행 범죄자들이 타 중학교로 전학을 왔군요. 이런 사건이 언제나 그렇듯, 피해자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황인데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는 상황입니다.

인천 중학생 합동 성폭행 사건의 개요


2019년 12월 23일. 새벽 1시경.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남자 중학생 2명이 또래 여중생에게 술을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든 후, 합동 강간한 사건입니다.

가해자들은 범행 1주일 전부터 범행 장소를 물색 하는 등 범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범행 당일 새벽 1시. 가해자들은 피해자와 친한 친구를 미끼로 피해자를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합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또 다른 친구에게 '내가 안 나가면 친구가 가해자 A, B에게 폭행을 당할거야.'라고 말한 후 자신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112에 신고를 해달라는 당부도 하고 밖으로 나갑니다.

평소 가해자 A, B가 또래 집단에서 어떤 위력과 지위를 갖고 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학생은 남학생들이 주는 술을 강제로 받아 마신 후 정신을 잃습니다. 가해 남학생들은 피해 학생을 끌고 다닙니다. 처음에는 지하 1층의 헬스장으로 질질 끌고 갔다가, 나중에는 CCTV가 없는 아파트 옥상으로 피해 학생을 끌고 갔습니다.

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피해 학생을 강간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 그렇게 피해 여학생은 가해자 A, B의 협박으로 밖으로 유도되어 외출한 후, 평생 지울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한편, 가해자들의 휴대전화에서는 피해 학생의 나체 사진도 발견되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증거물로 제공할 수 없다는 범행현장 CCTV


아파트 관리소에서는 가해 학생 A, B가 피해 여학생을 질질 끌고 다니는 CCTV 영상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가장 강력한 증거물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이 영상을 피해자 가족들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이 부분이 뭔가 석연찮습니다.

제 경우에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린지 이틀이 지난 뒤 관리소에 CCTV 공개를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설치된 모든 CCTV를 동원해서 초 단위로 영상을 돌려가며 잃어버린 물건을 결국 찾은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도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주민이 요청하면 CCTV를 제공하게 돼 있습니다. 주민이 요청하는데도 왜 관리소에서 CCTV를 제공하지 않는 것인지 의아합니다.

CCTV 영상이 고의적으로 제거된 것은 아닌지 수사당국의 조사가 필요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번 경우는 물건을 잃어버린 수준이 아닌 강력 범죄의 현장이 담긴 중요 증거물인데도 말입니다.

가해자 A의 아버지가 힘 좀 쓰는 사람인가?


CCTV가 절묘하게 사라지는 부분도 그렇고, 신고 초기에 연수경찰서의 태도도 미적지근 했다고 합니다. 경찰의 수사가 더디고 수사 의지도 약해 보이자 답답한 마음에 피해자 어머니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립니다. 이 청원에는 40만 명 이상이 동의를 하였습니다.

연수경찰서의 수사 의지가 없어 보이자, 피해자 어머니께서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린 글 <자료 : 청원대 청원게시판>

청와대 청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언론에서도 이 사건에 주목하자 그제서야 경찰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CCTV를 피해자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수사에 미온적이었던 연수경찰서의 태도도 그렇고, 가해자 A의 아버지가 돈이 좀 있거나 아니면 힘이 좀 있는 사람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게 인천 어머니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가해자 A의 아버지가 공무원이라는 소문도 돌고요.

사람들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연수경찰서와 가해자 A의 아버지 간에 모종의 무언가가 있었다는 의심이 커지면 상부기관에서 감찰을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면 가해자 A 아버지도 곤란하게 되겠죠.

피해자가 입고 있는 2차 피해


아직도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이 한참 멀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가장 친했던 친구를 만나려고 했는데,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건 이후, 친구의 어머니가 피해자와 놀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왜 그런 것 인지는 더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춘기 시절 가장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것 또한 친구라는 존재입니다. 그 친구마저 소통할 수 없고 차단이 되었으니 피해자가 느낄 절망감의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됩니다.

피해 학생이 마음의 상처를 잘 치유하고, 조속히 사회에 복귀하여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도록 부모님과 학교는 물론, 사회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범죄자들은 학교가 아닌 교정시설로


가해 학생들은 범죄 사실을 숨기고 타 중학교로 전학을 하려 하였습니다. 머지 않아 해당 지역 학부모님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현재는 가해 학생들의 전학을 반대하는 캠페인과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해 학생들의 전학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부모님들 <사진 : 송종식>

가해 학생들은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물론 '자발적'이라는 미명하에 전학까지 무사히 마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학이 먼저가 아니라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을 잘못된 길로 키우고 있는 가해자 아버지


가해 학생 A의 아버지는 피해 학생의 몸에서 아들의 정액이 나오지 않았고, B의 정액만 나왔으므로 자신의 아들은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해 남학생들은 피해 여학생을 지하에서 강간하기 위해 질질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강간 장소를 물색하던 중 옥상에서 일을 치렀습니다. 술에 취한 여학생을 이리저리 질질 끌고 다니며 이동을 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이것을 과연 가해학생 B 혼자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일 일까요? 둘 이니까 범행이 수월하게 이루어진 측면이 확실히 존재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쨌든 가해 남학생들은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범행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피해 학생을 강간하기로 약속했고, 휴대전화로 피해 학생의 나체까지 촬영하였습니다.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새벽에는 집에서 잠을 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법정이 증거로 돌아가는 곳이라고 해도 세상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가해자 A의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 듯 합니다.

그리고 저도 이런 경우를 종종 목겼했지만, 판사의 경우에는 이런 경우를 한두번 본 게 아닐겁니다. 사건을 주도한 가해자가 변호사를 잘 써서 처벌을 받지 않고 빠져 나가려고 시도하는 경우는 매우 흔합니다.

또,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가해자 A는 이전에도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소위 불량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제대로 대처를 못한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그 부분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가해자 A의 아버지는 모든 책임을 가해자 B에게 떠 넘기는 것은 물론 자신의 아들은 무죄라고 주장하며 언론을 상대하고 변호사를 데리고 다니며 물밑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실화탐사대에 등장한 가해자 아버지의 언행은, 대중들의 큰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피해자 오빠에 대한 고소, 본질을 흐리기 위한 물타기일 뿐


주요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가해자 A는 법률 대리인인 변호사를 통해서 피해 여학생의 오빠를 고소하였습니다. 고소의 취지는 '가해자 A, B를 감금하여 허위 자백을 유도하였고, 심지어 조직폭력배도 동원하였다'하는 것입니다.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형량을 줄이기 위한 전형적인 물타기입니다.

실화탐사대팀이 확보한 취재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가해자 A군과 B군의 자백은 내용이 꽤 자세합니다. 그리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덤덤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분위기상으로는 가해자 A 아버지의 주장대로 피해자의 오빠가 가해자들을 힘으로 겁박하여 감금한 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피해 학생과 가족들에게 평생 사죄를 하고 살아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말까 싶은 사건에서 이들의 태도는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여동생이 있는 오빠들의 반응은 한결 같습니다.

"오빠한테 보복 당해서 머리 안 깨진 걸 다행인 줄 알아야지. 적반하장이네."

가해자들의 인생은 구제 확률이 매우 낮아 보입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법으로 들어서는 가해자 A군과 B군 <사진 출처 : 세계일보>

2020년 4월 9일. 가해자 A군과 B군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두하며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모습은 전형적인 불량학생의 모습이었습니다. 반성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피해자의 오빠가 가해 학생들을 찾아낸 곳은 유흥가의 노래방이라고 합니다. 세간에 사건이 알려진 이후임에도 가해자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동안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엄청난 사건의 결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유흥가에서 놀고 있는 가해 학생 A와 B. 피해자를 향한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보입니다. 사과는 당연히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또한, 이는 가해 학생의 부모가 가해 아이들에게 심리적 안심을 시켰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품어봅니다. '괜찮아 괜찮아. 너희 죽을 죄 지은거 아니야. 아빠가 도와줄게' 하면서 말이죠.

이런 아이들의 태도와 행동으로 볼 때, 이 아이들의 구제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게다가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이들의 잘못에 제동을 걸고 교육을 제대로 시키기 보다는, 아이들의 죄를 지우려 하고 아이들을 감싸고만 도니 아이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더욱 폭주하여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두 아이는 구속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처벌을 피할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혹여나, 변호사가 변론을 잘 해서 아이들이 무죄로 풀려 나더라도 이 아이들의 미래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전국 엄마들에게 이들의 신상이 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스마트폰 시대이니 만큼, 정보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특히, 이런 민감한 사안과 관련해서는 속도가 더욱 빠릅니다.

가해 학생들이 전학을 가기로 한 중학교의 학부모회는 물론이고 인근 학교의 학부모들과 해당 학교가 있는 아파트 단지의 모든 주민들이 이미 이들의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전학을 반대하는 집회와 서명도 벌이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전국 어디로 전학을 가더라도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국내에서 산다면 초졸로 살아가야겠지요. 만약 해외로 나간다면 한인 사회에 섞이기는 힘들겁니다. 한인 사회 어디로 가더라도 이 소문은 금방 퍼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가해자 A의 아버지가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피해 학생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하도록 자신의 자녀를 교육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따끔하게 혼내는 것은 물론, 사법당국에도 아이들을 엄벌해 달라고 되레 더욱 강경하게 요청을 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사회에 제대로 복귀할 수 있을까 말까였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버스는 떠났습니다. 가해 아이들의 인생은 사회에서 이미 거세가 된 것으로 보이고, 그 아버지 또한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변호인(법률대리인)


가해자들은 누군가가 시킨 것 마냥 '피해자와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다'라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법률대리인이 가해자들을 무죄로 만들거나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이렇게 진술하도록 옆에서 가르쳐 준 것으로 보입니다. 가해 아이들도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피해 여학생은 정형외과에서 전치 3주 진단을, 산부인과에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습니다. 특히,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저항할 때 생기는 저항흔의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런데도 가해자들은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법을 잘 아는 자 즉, 변호인이 거짓을 진술하도록 가해자들을 교육하고 있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피해자의 어머니께서 작성한 글을 보면 범죄혐의를 적극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가해자 A의 가족과 변호인이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세간에서는 변호인이 돈에 눈이 멀었다고 손가락 질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돈 보다는 가해자 A의 아버지와 변호인이 그 이상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는 사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학생, 탈선의 폭발력과 위험성이 가장 극심한 때


저의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거쳐왔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중 가장 폭력 성향이 짙은 집단은 놀랍게도 군대가 아니라 중학교였습니다. 중학생들의 학교폭력과 집단 괴롭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초등학생은 아직 청소년이기 보다는 아이(아기)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학교폭력이 없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영악해지기 전 이라서 그래도 크게 잔인한 사건을 일으키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그들끼리 치고 받고 해도 상대에게 입히는 타격도 중고등학생들에 비하면 약합니다. 아직 육체적으로도 연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른을 비롯해서 타인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힐 가능성도 거의 희박합니다.

고등학생은 이미 체력면에서는 성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 비하면 월등히 성장해 있는 상태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사고를 칠 경우 자신들의 인생과 미래가 어떤식으로 전개되어 갈 지 대부분 인지를 할 만한 나이입니다.

또 대학 진학을 준비하느라 공부하는데 바쁘죠. 불량 학생들도 사회에 진출할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 중학생들처럼 아주 개념없이 행동하기는 힘듭니다. 행동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 다는 것을 충분히 아는 나이입니다.

게다가 육체가 이미 성인 수준으로 성장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충돌을 할 경우 서로 간에 막대한 상해를 입을 수 있어서 중학생일 때 보다는 몸을 사리는 경향이 짙습니다.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학교 폭력이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들지만 중학생들 보다는 학교폭력 사고가 많이 줄어듭니다.

대학생이 되면 학교폭력이니 뭐니 이런 개념이 사라집니다. 오히려 주먹 자랑을 하면 무시 당하며 기피의 대상이 되죠.

문제는 무서운 중학생들입니다. 중2병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연령은 초등학생때와 비교해서 크게 성장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발육속도가 빨라져서 신체는 무섭게 성장합니다. 빨리 크는 아이들은 어른 수준의 신체 구조를 갖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춘기가 대부분 중학교 때 옵니다.

철이 들기는 힘든 나이이지만 어느 정도 영악하게 머리를 굴리는 나이. 그리고 육체적으로는 어른을 상대로도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나이. 학교폭력의 위력도 강해지고 사고 자체도 늘어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학교폭력 뿐만 아니라 학교 바깥에서 일으키는 범죄나 사고의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고, 잔인함의 강도도 더해가고 있습니다.

비행소년들의 학교 폭력을 비롯해서 학생들의 전체적인 정서 관리에 쏟는 자원이 중학교에 집중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날로 커지는 '소년법 폐지' 여론


소년법이 폐지되면 '교화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에 한해서는 교화 가능성이 영원히 상실됩니다. 아직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교화될 기회 없이 곧장 어른과 동일한 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급한 소년법의 폐지 논의 보다는 보다 세분화 된 법집행을 위한 사회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에서 이런 분노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그만큼 청소년들의 범죄가 잔인, 흉폭,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언론에서도 이를 더욱 부각하는 추세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 국민에게 보급된 스마트폰과 인터넷 덕분에 어린 아이들도 이제는 어른들의 세상을 더 빨리, 그리고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아이들은 자신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어른들 만큼은 처벌 받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악한 아이들은 사회와 법이 자신들에게 허용하는 관용을 역이용하여 악한 행동을 하고 다니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날로 흉악해지는 청소년들의 범죄, 그 중에서도 중학생들이 일으키는 강력범죄의 경향은 날로 그 범위가 넓어지고 더 잔인해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중학생들이 일으키는 강력 범죄의 발생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통계상의 착시를 이용한 선동이거나, 통계를 왜곡한 의도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1980년 중학생의 학령 인구는 총 259만여 명이었고, 2019년에는 출생인구의 감소로 그 숫자가 130만 명 까지 줄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러운 인구감소의 영향을 받은 범죄 발생건 수를 축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소년법 제4조 제2항을 보면 소년부의 보호사건으로 심리하는 소위 촉법소년의 나이를 만10세에서 만14세 소년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촉법소년의 나이를 낮추는 것이 당장 소년법을 폐지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나 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만 14세면 중학생이고, 한창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닐 나이입니다. 촉법소년의 나이를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수준으로 낮추자는 의견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이런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그만큼 시민들이 청소년들의 범죄에 대해서 위협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교화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 vs. 사회와 당장 격리 되어야 하는 아이들


보통 강간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강간만 저지르지 않습니다. 죄 의식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살인을 하는 사람에게 강간이나 도둑질을 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이겠지요. 이번 사건에서도 나타났지만 성폭행 가해자 A군과 B군은 또래 친구들에게 폭력을 자주 행사하였으며 크고 작은 사고를 계속 치는 아이들이라고 동네에 소문이 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드러나지 않은 범죄 행각도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불량학생이라고 해도 강간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 것입니다. 즉, 강간 범죄를 저지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당사자들은 그중 하나가 재수없게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반성을 하고 있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강력범죄자들은 다양한 범죄를 연쇄적으로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데다 개과천선하고 사회에 잘 정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특히, 본 사건에서의 경우에서처럼 어릴 때부터 범죄자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집에서 그것을 비호하는 경우에는 그럴 확률이 더욱 높아집니다.

차라리 우발적이거나 불우한 환경 탓이라도 할 수 있다면 정신차릴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집이 중산층 이상이고 아버지가 힘을 좀 쓰는 경우에는 이들이 사회에 어울리도록 교화하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죄를 짓고도 법망을 이용해서 빠져나갈 시도만 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죄의식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따위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사회와 격리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전을 위해 더 나은 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5월 1일
송종식 드림


2020년 1월 7일 화요일

조 단위 부자도, 대통령도 하늘이 낸다

마이애미 부촌의 한 개인주택 <출처 : home-designing.com>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들을 추종합니다. 워런버핏이 한마디 던지면 그 이야기는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전파됩니다. 투자자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투자분야 뿐만 아닙니다. 어떤 분야든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가장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을 추종합니다. 그나마 그 사람의 철학을 제대로 추종하고 뽑아먹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주변에 보이는 많은 초보투자자분들의 행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수의 사고방식이나 철학 중 배울점이 있다면 배우려고 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뭔가 즉각적으로 이익을 줄만한 이야기를 하는지, 그것에 더 목을 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투자의 경우에도 천천히 바닥부터 배워 올라가고, 시장에서 경험을 쌓아서 내 스스로 훌륭한 투자자가 되려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게 계시지만, 많은 투자자가 남들이 던져주는 종목을 소위 '받아 먹으려고' 추종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자기 성장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늘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다니는 허수아비 인생밖에 살지 못하지요.

또, 사람들의 목표가 너무 높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제 주변에는 대기업에서 정년 퇴직을 한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기업에 들어갈 정도면 일단 샐러리맨 중에서는 상위 5%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부장급~임원급으로 정년 퇴직을 하였으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꽤 안정된 삶을 살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퇴직 후 어르신들의 삶은 의외로 비참하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월급 1~200짜리 아르바이트급 일자리에 재취업을 하시거나 그 마저도 못하시는 분들은 골방에서 하루하루 시간만 때우는 분들이 적지 않으셨습니다.

직장을 다닐때 재테크나 부업으로 퇴직 이후의 삶을 잘 마련하셨다면 좋았겠지만 일단 그 이야기는 이번 글에서는 논외입니다. 상위에 속하는 근로자들의 삶도 저렇습니다. 그런데 저 정도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는 백 억을 벌거야, 천억을 벌거야, 조를 벌거야..'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그야말로 현실 파악을 못하는 것입니다.

금융자산을 11억 원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100억 자산가는 5,500여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01%입니다. 흙수저 사람이 100억 부자가 되기란, 고교생이 서울대 의대에 입학할 수 있는 확률보다 떨어진다는 소리입니다. 200억대 이상의 부자는 800여명 정도 된다고하니 그 확률은 더 떨어집니다.

대통령과 조 단위 부자는 하늘이 낸다


몇천억, 몇조를 벌겠다는 청년들이 많아졌습니다. 유동성의 팽창과 스타트업 진입의 용이성으로 조가 우스워진시대입니다. 그러나 조단위 부자는 내가 될 수 있다고 되는 것의 성격은 아닐것입니다. 조 단위의 재산을 가진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자는 소리는 아닙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가슴속에 큰 꿈은 늘 품고 다녀야겠죠. 애초에 목표나 꿈이 없다면 작은 부자조차 되는 것이 불가능할테니까요. 꿈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꿈은 가슴속에 묻어놓고 우리는 철저히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10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적지 않은 친구들이 '저는 25살쯤에는 성공해서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닐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20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저는 40살 쯤에는 100억? 아무리 못 벌어도 20~30억은 벌고 넉넉하게 살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40~50대 선배님들은 집값이나 안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살아보니 세상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모난 돌은 정을 맞아 점점 둥글어집니다.

재능과 끼가 많은 청년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지만 삶은 늘 제자리입니다. 그런데, 학창시절부터 무식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친구는 별 것도 아닌(?) 장사를 하면서 나이 서른에 벌써 아파트 두채를 사고, 외제차를 두대나 굴리면서 아들딸 낳고 잘 삽니다. 가게도 벌써 몇개나 냈다고 합니다. 재능과 끼가 많은 친구는 억울해합니다. '나는 쟤보다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지식도 많고 훨씬 뛰어난데 왜 별 것 아닌 허드렛일을 하는 친구가 돈을 더 잘 버는가. 인생 현타온다'. 장사가 쉽다거나 장사하는 분들이 무식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니 맥락에서 벗어난 오해는 없으면 좋겠습니다.

재능과 끼가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끼를 믿고 너무 높은 이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현실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케이스가 위와 같은 케이스입니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 별 것 아닌 일이라도 그것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이 결국 작은 성과들을 쌓아갑니다. 그 성과들은 복리로 커져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별 것 아닌 일을 하던 사람이 회장님 소리를 듣고 사는 것입니다. 떡볶이 장사, 치킨 장사, 학습지 팔이, SNS 바이럴 마케팅.. 단순한 업종에서 단순한일을 꾸준히 오랫동안 잘 해낸 사람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주식투자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단단히 마음먹고 주식투자를 꾸준히 열심히 해야합니다.

어쨌든 이상이 너무 높으면 현실은 더 피폐해 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나이가 젊은 친구들일수록 그런 태도는 더 위험합니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높은 이상을 가지라고 말해야 국가가 성장한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그게 그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오히려 실현 가능한 눈앞의 작은 목표들을 잡고 작은 일들을 꾸준히 잘 해내는 사람들이 그 목표들을 키워가면서 더 잘되는 경우를 많이 봐 왔습니다.

너무 슈퍼개미나 대가들만 추종하기 보다는 일단 내 계좌를 5,000만원을 만들자, 1억을 만들자, 이후엔 3억을 만들자. 이런 작은 목표들에 집중하는게 더 좋습니다. 그렇다고 빨리 가려고 욕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가도 됩니다. 천천히 가다보면 어떤 날은 스포츠카를 얻어 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비행기를 얻어타기도 합니다. 천천히 가도 한번씩 계좌가 점프업 하는 날도 있습니다. 눈앞의 목표부터 천천히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너무 남을 의식하지도 말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면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쫓기고, 남들과 경쟁의식을 느끼는 순간 투자든 인생이든 망가집니다.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부록 : 성훈형님과 김영식 회장님


주식투자로 크게 성공해서 유명한 heyda(성훈)형님도 때마침 최근에 블로그에 이런 비슷한 글을 쓰셨습니다. 너무 큰 목표를 잡고 투자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 꿈을 못 이룰 수 있다고요. 작은 목표, 할 수 있는 작은일 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언젠가는 그 이상의 위치에 올라 있을거라고요. 저도 동의합니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라는 유행어로 유명하신 김영식 회장님은 어릴적부터 저의 멘토이셨습니다. 가난하고 힘들던 저의 사고방식을 많이 개조시켜주셨습니다. 그분과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습니다. 나중에 하나씩 글을 써 보겠습니다. 이번글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송군은 어른되면 뭐하고 싶노? 목표가 뭐고?"
"저는 금액으로는 40조 정도를 벌어서, 우주센터를 건립하고, 재능이 있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발굴하여..."
"그만그만. 목표를 그래 잡으면 아무것도 못한데이. 니가 할 수 있는 것 부터 하그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스무살의 저는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현금 1억부터 만드는 것으로요. 그리고 저는 20대에 순자산 1억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그 1억원이 저의 소중한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작은 일 부터 지금 당장 시작해서 그것을 꾸준히 해보면 어떨까요?

2020년 1월 7일
송종식 드림


2019년 12월 1일 일요일

전업투자자, 정신 번쩍 드는 방법

전업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당연히 다시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하는 것, 개인의 자유가 사라지고 생계를 위해 월급에 의존해야 하는 것.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업투자를 장기간 하였다면 재취업은 당연히 힘들테니 투자로 실패하면 사회 밑바닥을 전전하게 될것입니다. 배고프고 어려웠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나태함과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전업 주식쟁이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전업트레이더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죠.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붙어서 매매를 합니다. 호가창을 놓칠세라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해외 증시를 체크합니다. 장 마감후에는 복기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생계형 전업 비중이 많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전업투자자입니다. 매매를 자주 안하는 가치투자자들이 많습니다. 가치투자 지향형 전업투자자들은 스타일이 다양합니다. 사업보고서를 읽으며 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책을 읽는 사람이 있고,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업탐방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있고, 취미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낮잠을 즐겨 자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전업투자자 중에서는 하루 일과를 정해진 루틴대로 사는 분도 많습니다. 부지런하게 일어나서 전업사무실에 출근을 하고 그날 나온 리포트를 모두 훑은 후, 회사와 통화도 하고 기업분석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장이 마감하면 곧장 집으로 퇴근합니다.

또, 반대로 저 처럼 게으른 전업투자자도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놀러 다니고, 읽고 싶으면 읽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는 등 정해진 루틴없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삽니다. 옆에서 혹은 위에서 누가 이끌어주거나 혼내는 사람이 없으니 저 처럼 게으르고 고삐풀린 망아지는 갈수록 나태해집니다.

투자는 운이 크게 작동하는 분야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인 성실함이 배제된다면 투자자 생활을 꾸준히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처럼 게으른 전업투자자분들은 한번씩 정신이 번쩍 들만한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버스나 전철 첫차 타보기


지역마다 회사마다 편차는 있습니다만, 보통 지하철이나 버스는 새벽 4시 30분~5시 30분 정도에 첫차를 운행합니다. 직장인들도 좀처럼 타보기 힘든것이 첫차라 생각됩니다.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으로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딴 세상에서 운행되는 차량들입니다. 그리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죠.

새벽 4시 버스 첫차 <출처 : hani.co.kr>

지하철 첫차나 버스 첫차를 타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질거라 생각합니다. 첫차는 만석 수준이 아니라 사람으로 미어차서 운행됩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는 시간인데도 그렇습니다. 세상이 정말 부지런하게 돌아가는 걸 느낍니다.

그 중에는 사장님도 있을 것이고 부지런한 직장인도 소수 있긴 할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일용직이나 막일을 다니는 분들입니다. 몸에 차고 있는 장비들이나 옷차림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절대로 그분들을 비하할 의도로 작성하는 글은 아닙니다. 그분들도 다 각자가 가진 사연들이 있을테니까요. 다양한 사연들이 있겠지만 그들은 첫차 그득 몸을 싣고 일터로 향합니다. 표정들은 거의 대부분 일그러져 있거나 행복하지 못한 표정들입니다.

내가 나태해서 계좌 수익률을 까먹거나, 올바르지 못한 판단으로 실패를 할 경우 이렇게 첫차를 타고 생계를 유지해야 할 수 있음을 피부 깊숙히 상기해보면 정신이 번쩍듭니다. 아둥바둥 살 필요는 없지만 늘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기본적인 성실함은 유지해야 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지금 먹고 살만하다 싶으면 나태해지기 쉬우므로 한번씩 새벽 첫차를 타고 나도 노가다 현장으로 나간다는 마인드를 상기해보면 머리가 번쩍 깨입니다.

아르바이트나 직장인(프리랜서) 체험 해보기


"내 주머니에는 지금 1원도 없다. 나는 생계를 위해서 이것을 한다." 이렇게 단단히 세뇌를 합니다. 그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신문배달, 대리운전 등의 일을 한두달 해보면 이것도 정신이 번쩍듭니다. 원치 않는 시간에 원치 않는 노동을 하는 괴로움. 그리고 박봉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함. 온갖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갑질과 모욕.

두번 다시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머리 좀 굴려서 기업발굴을 하고 손가락 까딱까딱해서 과분한 수익을 올리며 사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새삼느끼게 됩니다.

최근에 알게된 것인데 프리랜서도 회사에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퇴근은 하는데 정규근로자는 아닌 특이한 형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프리랜서는 정식 채용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보통 한달이나 두달 단위로 계약을 하고 일을 종료하는 방식인데 이것도 한번씩 해보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자차로 다니면 안됩니다. 모든 직장인이 벗어나고 싶어하는 출퇴근 시간 콩나물 시루같은 전철을 타고 며칠만 왔다갔다 해보면 정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누가 나에게 잔소리 하고 관리하지 않는다고 나태하게 살면 안되겠구나.", "투자금을 모두 잃으면 생계를 위해서 정말 평생 이렇게 출퇴근 해야되는 수가 생기는구나.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해당 직종이나 직군에 대해서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의사 결정과 게으름으로 투자금을 잃게 되면 다시 종자돈 모으는 기약 없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의 두려움을 알고 부지런하고 진지하게 투자하자는 의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1초, 계좌에 있는 100원의 소중함


한번씩 저런 체험을 하다보면 내게 주어진 1초가 새삼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계좌에 있는 숫자도 그냥 화면에 찍힌 숫자가 아니라 진짜 돈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나를 지켜주는 최후의 그 숫자들. 현재 가진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잃지 않는 투자를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철학적 토대 다지기.. 이런것들을 상기할 수 있게 됩니다.

고통 체험은 짧게 가끔씩만


'고시원에 살기'나 '쪽방촌 깔세방 한달 살기' 같은 다양한 체험도 정신 차리기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충격 요법은 나태할 때 가끔씩만 해야합니다. 그리고 체험후에는 반드시 5성급 호텔에서 쉬든, 여행을 가든 뇌에게 회복기를 줘야합니다. 일부러 어려운 체험을 한다고 해도 자칫 뇌가 가난한 쪽으로 방향을 틀고 굳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합니다. 자신의 나태함을 반성하는 용도이어야지 나의 잠재의식과 뇌가 다시 가난을 향하도록 두어서는 안됩니다.

* 덧 붙이는 글 : 누군가에겐 삶일지언데, 누군가에겐 '체험'이라고 하니 상당히 건방진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크게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글이고요. 다만, 저희 전업들은 저희들 위치에서 정신을 차릴만한 방법들은 늘 필요한 법이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가난과 부는 순식간에 뒤집어 질 수 있는 것이고, 누구의 운명이든 손바닥 뒤집히듯 뒤집힐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철, 버스 첫차에 몸을 싣고 자기 할일을 묵묵히 하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그분들의 삶도 술술 잘 풀려서 머지 않은 미래에는 고생을 덜 하고 사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019년 12월 1일
송종식 드림


2018년 6월 28일 목요일

북한 현지에서 제 블로그에 방문했습니다

애널리틱스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북한 현지에서 제 블로그에 방문한 기록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1년에 Moveable Type을 설치하면서 블로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와 함께한지 20년 가까이 돼 가네요. 20년 가까이 블로그를 하면서 느끼는 재미 중 하나는 방문객 분석인데, 늘 북한 지역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분석 도구를 통해서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언제쯤 북녘에서도 자유롭게 인터넷을 쓰고, 우리나라 네티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을까?' 늘 그런 생각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분석도구는 이것저것 쓰다가 구글에서 애널리틱스가 출시된 이후로는 줄곧 그것만 쓰고 있습니다.



위의 지도에서 파랗게 칠해진 부분은 올해 3월까지 한번이라도 제 블로그에 방문한 기록이 있는 국가들입니다. 북한, 예멘,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나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제 블로그에 한번 이상은 접속을 하였습니다. 북한은 늘 저렇게 회색지대였습니다.


올해 4월 17일, 제 블로그 방문객들이 접속한 국가들입니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그날 방문을 했던 나라들입니다. 북한 지역의 색상이 파랗게 칠해져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블로그 상황은 모르겠지만 제 블로그에는 북한에서 접속한 기록이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북한에서 저날 방문한 사람은 1명이고 이후로는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4월 17일은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약간은 들떠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북한은 통상적인 비난 정도만 하는 정도로 분위기 경색 국면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고, 김정은 위원장 부부 내외는 공연을 관람하면서 차분하게 보낸 하루였습니다.

최근 북한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물론 인터넷도 오래전부터 쓸 수 있었지만 몇가지 제한조건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인터넷은 인터넷이기 보다는 북한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인트라넷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마저도 북한의 최고 엘리트 계층만 이용을 할 수 있습니다.

해외의 사이트에 접속하려면 반드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오간 패킷은 모두 당국에 의해서 검열이 됩니다. 인터넷은 사상의 전파가 가장 빨리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인터넷 이용 통제와 검열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맨위에 세계 지도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1만km 이상 떨어진 나라에서도 수백~수만명이 제 블로그에 접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코앞에 사는 북한에서는 단 한명도 제 블로그에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에서 여전히 인터넷 검열이 심하다는 것을 제 블로그에 나타난 통계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분석해둔 글은 있지만 블로그에는 비공개 상태입니다. 제 블로그에서 북한을 언급한 건 혼잣말로 한두줄 써둔 "북한과 경제 교류가 확대되면 좋겠다" 정도 뿐입니다. 따라서 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김정은이나 그 아래 실무진들의 리서치 차원의 방문이었다면 제 블로그에서 별로 얻어간건 없었겠네요.

20년 가까이 단절돼 있다가 북한에서 온 블로그 손님 덕분에 반가워서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6월 28일
송종식 드림


2013년 4월 25일 목요일

즐겁게 벌고, 시원하게 사회에 돌려주리라

내가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순전히 내가 잘나서 그렇다고 느끼면 오산이라 생각한다.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숨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의 경영진과 임직원분들이 열심히 일해주니 기업 가치는 날로 커진다. 또 투자하기 위해 인터넷망을 이용하는데 그 인터넷망을 유지보수하고 운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고생하는지 잘 알고 있다. 증권사에서는 내 주문을 받아서 거래를 체결시켜주는 분들이 계실거고, 전자공시 제도 덕분에 집안에 앉아서도 기업의 여러가지 정보를 구할 수 있다.

시시각각 이런 저런 뉴스를 전해주는 기자분들이 계시고, 재무제표 감사를 위해 많은 회계사 분들이 이 시간에도 땀흘려 일하고 계신다. 기업인의 부정을 막기 위해 여러 관료분들이 노력해주시고 계시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경제가 평화롭게 돌아가도록 군인 동생들이 젊음을 바쳐 이 시간을 지켜주고 있다.

이외에 무수히 많은 분들의 도움덕에 나는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물론 굶주려 가며 종잣돈을 모았던 고통과 밤잠을 줄여가며 기업을 분석하는 고통 그리고 가끔은 피말리는 시장 상황에 노출돼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세상의 많은 분들이 내게 제공한 혜택에 비하면 이는 새발의 피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키워보니 아기 한명을 키우기 위해 부모님을 비롯해서 주변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두발로 걷기 시작하기까지 우리 부모님이나 내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고생하셨을까?

또 내가 사색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스승님들이나 은사분들의 노고는 얼마나 크셨을까?

문득 세상 모든일은 그냥 이루어진게 없으며 내가 지금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 또한 내가 잘나서 그런게 아니라 세상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시장에 참여하는게 즐겁고 돈을 버는게 신난다. 일단 당분간 신나게 벌겠다. 그리고 추후 이 적성에 흥미가 시들해지면 사회에 멋지게 보답하리라 다짐해본다.

2013년 4월 25일
송종식